언어 다음으로 남양문명이 널리 공유한 요소는 항해술이다. 두 섬 사이를 동북-서남으로 잇는 선을 따라 늘어서 있는 수백 개 섬이 류구(琉球) 열도다.1830년 중국으로 향하는 류구왕국 사절단 선대(船隊). [사진 위키피디아] 류구열도는 물론 규슈 남부까지 한때는 남양문명권에 속해있었던 것으로 블렌치는 본다.해양문명인 남양문명이 대륙문명에 밀려난 결과다.대륙문명권의 경제적-문화적 영향이 커지는 데 따라 류구인의 사용 언어가 남양어에서 대륙의 언어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. ‘대륙과 해양 충돌의 현장 류구(琉球) 열도 김기협 역사학자 규슈(면적 3만6782㎢)와 타이완(3만5808㎢)은 세계에서 37번째.추측건대 한반도와 일본 남부를 포함하는 동아시아문명권의 7세기경 성립에 중요한 원인이 있는 것 같다. 청나라에 조공을 바쳤던 외국인을 그린 ‘황청직공도(皇清職貢圖·1769년경)에 등장하는 류구인. ) 해양 세력 앞지른 대륙 세력에도(江戶) 시대의 류구왕국 사절단(1832).덩치 큰 타이완보다 먼저 알려져 백제 멸망 후 중·일 항로로 부각 15세기 해상 요충지에 류구왕국 바다 건너온 중국인이 지배계층 ‘메이지유신 일본. 임진왜란 후 중국 조정은 일본을 공식적으로는 외면했지만.)집개 모양의 두 개 돛살로 만든 게집개돛(crab claw sail)은 소형 범선의 평형을 지켜주는 아웃리거(outrigger)와 함께 범선 디자인의 가장 뛰어난 발명품의 하나다. 일반인은 구메무라 주민을 중국인의 후예로 여겼다.타이완이 머물러 있던 해양문명권을 중국에서는 ‘남도(南島) 문명이라 부른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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